Loading...
뮤지션 불타는버스의 배경
뮤지션 불타는버스의 프로필 이미지

불타는버스

불타는 버스는?

2005년 겨울즈음 이원찬과 조영환의 '크레이지로드' 라는 밴드에서 부터 쌓아온 악연으로 인해 탄생된 팀이다.

그 당시 조영환은 Alice in Chains 커버 밴드인 'SlighRide' 라는 팀에서 보컬로 활발히 활동중이었고

이원찬은 크레이지로드로 뮤직계에 갓 입문한 뮤직애송이었던 중 수유리 '배트락바'의 공연에서 조영환의

카리스마 있고 에너지 넘치는 포스에 압도 당해 조영환에게 밴드가입을 적극 권유하였고, 조영환은

자작곡 중심으로 좀 더 활발한 활동을 하는 팀을 찾고 있었던 터라 아무 거리낌 없이 의기투합 하게 되었다.

  1. 신당동 666번지의 전설

신당동 666 번지에 밴드 'Nu (이하 뉴)' 와 함께 자체 연습실을 만들게 된 크레이지 로드는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일단. 조영환의 군복무문제, 베이시스트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었고 이원찬은 정신질환때문에

밤마다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었던 것 이다. 666번지의 터가 안 좋은 터인 것이었는지.. 이 때 당시 같이 생활하며

가스 관에서 흐르던 물을 함께 마시던 이들은 전부 탈모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후에 베이시스트는 팀에서 탈퇴를 하고 이 후 기나긴 베이스 부재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잦은 멤버교체는 남아있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그 이후 약 3년을 더 버티었지만

끝내 팀 해체라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인디밴드의 수순을 밟고 다들 각자의 삶 속으로 흩어져 갔다.

그 이후 30대가 넘어버린 어느 시점 다시금 조영환과 이원찬은 연락하였고,

처음 시작 할 때 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다시금 기타를 잡고 합주실을 방문하였다.

  1. 남요셉의 등장

조영환이 솔로로 라이브 무대를 준비 하던 중 이원찬에게 부탁을 하였고 15년지기 동네 후배 남요셉이 젬배를 샀다는

소리에 무작정 쏘주 한잔 사주며 같이 공연 한번 하자는 것을 계기로 불타는 버스가 시작되었다.

악기 잡은지 1주일만에 공연을 하고 그 뒤 계속해서 공연을 잡아 나가서 마치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3개월 연습만에

대회출전 5반칙 퇴장을 계속 반복, 종료후의 멋진 슬램덩크가 초심자를 벗어나는 계기가 됐 던 것처럼

조영환의 잔소리 이원찬의 잔소리를 다 이겨내며 끝끝내 연습을 안하던 남요셉은 아직도 연습을 안하고 있다.

하지만 1년에 100여회의 공연으로 단련한 결과 현재 남요셉의 퍼커션의 스타일은 드럼계의 코지파웰과도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의 강력한 파워를 장착하게 되었다.

3 . 4인조 개편, 활동 중단, 3인조 복귀

남요셉의 개인사로 탈퇴후 4인조로 개편 정통 ROCK 밴드로 변신을 시도 2017 동두천 락 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한 후 EP 앨범을 녹음 중에
멤버간의 견해차로 해산하였다. 그 때의 음원은 락캠프 20주년 기념앨범 '사랑가' 에서 들을 수 있다. 그 후 5년이 흐르고 중년밴드 중식이의 중재로 인해
다시 3인조로 복귀 후 정규앨범을 녹음 하자는 목표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4 . 앞으로의 활동

10여년의 활동, 그리고 5년여의 공백, 음악으로 뭔가를 바꿔보려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40대를 살고 있다. 30살이 되면 접어야지,40살이 되면 음악 못하겠지 하던 애송이 같은 생각은
세월의 흐름의 휴지조각처럼 사라졌고, 의무감이나 사명감이 아닌 그냥 그 자체로 음악을 하고 있다.
거창한 것도 없고 탈모도 왔고 주름살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허세도 사라지고, 건방짐도 사라지고, 메시지만 남았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소년(정확히 21세기 소년) 의 켄지처럼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주고 싶지만 , 1명이라도 우리음악에 공감을 한다면
지난 세월만큼의 보상이 되리라 믿는다.

RockFolkPop

불타는버스의 공연

불타는버스의 음악들

등록된 음악정보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