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쉬 (Cr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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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비메탈 마니아들이라면 스래쉬, 스피드, 바로크, 데스, 블랙 등 메탈의 장르를 구분지으려는 시도에 대해서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무의미한 일이 될 수 있으며 사실상 경계 자체를 구분 짓기도 어렵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탈의 한 장르로서 '스래쉬 메탈(Trach Metal)의 의미는 각별하다. 메탈음악의 마니아들이라면 메탈리카(Metallica), 슬레이어(Slayer), 엑소더스(Exsodus) 등 스래쉬 메탈(Trach Metal)의 시조격으로 불리우는 그룹들의 음악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숨쉴 틈을 주지 않는 스피드, 반복되는 리프, 변칙적인 리듬, '앞뒤 안 가리고 두들겨 부순다.'는 뜻의 'Thrash' 에서 나온 스래쉬 메탈은 메탈의 그 어는 장르보다 에너지가 충만한 장르로서 규격화되고 인스턴트화화는 현대 사화의 단절감, 상실감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통쾌한 사운드와 저항적인 가사로 한 방에 날려버린다. 이런 맥락에서 크래쉬(Crash)와 같은 그룹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것은 마니아들로서는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공연에는 항상 열성적인 마니아들로 붐빈다. 하지만 이들은 반기는 방송사나 클럽은 없다. 한번 공연시에 드럼만도 7개의 마이크를 달고, 이 외에한 공연에 20개 이상의 마이크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들의 악기가 내 뿜는 파워를 이기지 못해 정전사고가 나기 일쑤다. 그만큼 이들의 연주는 대기를 뒤흔들 만큼 폭발적이다. 이들의 꿈은 제대로 갖춰진 공연장에서 팬들에게 제대로 음악을 들려주는 것. 5월 20~21일 서울 정동 A&C에서 어떤 무대를 펼쳐질 이들의 콘서트가 벌써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트래쉬는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헤티메탈 밴드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하나둘 없어지기 시작할 무렵인 1991년 3월 안흥찬, 윤두병, 이영화, 백창학이 결성했다. 후일 리더인 안흥찬은 결성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시 국내 메탈계는 LA 메탈 그룹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공주머리에 화장하고 쫙 붙는 스판덱스 바지를 입었다. 나는 그런게 싦었다. 우리는 `센 음악`을 하고 싶었다. ".이들의 완성도 높은 스래쉬 메탈은 국내 메탈 음악계의 지평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결성 후 서울, 인천 등 소규모 클럽을 중심으로 선배 밴드들의 오프닝 연주를 하던 이들은 1993년 2월 `록월드` 공연을 통해 정식 데뷔를 한다. 당시 이들이 보여준 위력적인 사운드와 퍼포먼스는 공연을 지켜보던 관객들의 헤드뱅잉뿐만 아니라 스테이지 다이빙까지 유도했다. 국내에서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들은 1994년 1월 이들은 스캇 번즈와 함께 데스메틸 제작의 세계적인 엔지니어인 영국의 리차드슨과 함께 국내 최초로 외국 아타스트들의 음반에 버금가는 스래쉬 메틀 음반인 Endless Supply Of Pain을 팬들에게 헌정한다. 이 음반에 수록된 `Scream`, `My Worst Enrmy`, `Smoke On The Water`와 같은 파워풀한 곡들은 당시 국내에는 이렇다할 메탈 밴드가 없다는 푸념을 일삼던 국내의 레코딩 엔지니어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이 음반은 국내 엔지니어의 실수로 마스터링 도중 중음역이 깎였고, 크래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국내에서 음반을 녹음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어쨌든 이들이 선보인 음악은 국내 메탈계의 퇴조를 걱정하던 마니아들에게는 대단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1집 발표 후 보컬인 안흥찬은 서태지와 아이들 3집에서 의 보컬 세션을 맡아 음악실력을 과시하는데, 이때 그는 2집 음반의 중요한 모티브를 에서 얻는다. 1995년 이들은 2집인 To BE Or Not To Be을 발표하는데 `Turn To Dust' `내가 그린 원 안에서`와 같은 그루부한 작품과, 아직까지도 국내 스래쉬 메탈음악의 진수라고 일컬어지는 `Reality Discord`, `In Process Of…`와 같은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다시 한번 팬들에게 그들만의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멤버들이 배제된 채 믹싱과 마스터링을 리차드슨에 이어 새롭게 영입한 저드 패거 혼자 진행해 마무리에 아쉬움을 남긴 음반이기도 하다. 2집 발표 후 크래쉬는 팀내의 구성에 있어 변화를 겪게 된다. 원년 멤버인 윤두병인 개인적인 사정으로 탈퇴하고, 대신 1,2집 녹음 때부터 빼어난 연주실력으로 세션으로 활동하며 이들의 음악세계에 동참해온 이성수, 하재용을 정식 멤버로 받아들인 것. 이성수, 하재용이 가세한 이후 이들의 팀웍은 더욱 탄력을 얻어 1997년 "이보다 나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드럼 어레인지는 있을 수 없다"라고 안용찬이 자찬할 정도로 이들 스스로나 마니아들 모두에게 베스트 앨범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3집 Experimental State Of Fear을 세상에 내놓는다. 1996년 10월에 영국의 맨체스터 근교에 위치한 채플 스튜디오에서 1집 때 함께 작업했던 콜린 리차드슨과 호흡을 맞춰 녹음한 이 음반은 그들의 음악이 본격적인 그루브감을 획득한 전기가 되었다. 프로듀싱과 믹싱 하에 그들의 베스트 음반을 만들어냈다(레코딩은 이완 데이비스가 했다). 첫 곡 `Breathe/Suffer`에서부터 통렬하고 직설적인 가사가 담긴 `Rats`, 실험작인 블루스 필의 `무상(Broken Eyes`은 외국 어느 메탈그룹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명곡들이었다.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공연 활동을 펼치며 음악적 역량을 다져온 이들은 2000년 4월, 그들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4집 Terminal Dream Flow을 선보인다. 4집은 발매 전부터 PC 통신 등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팬들의 기대를 한껏 모았다. 4집을 통하여 이들은 다양한 장르의 혼합으로 좀더 현란한(?) 곡들을 선보인다. 테크노적인 요소가 흠씬 가미되어 있는 'Failure' , '2019 A.D'과 같은 곡들이나 안흥찬의 절규가 살아 있는 'Losing', '15 Min Ago' 같은 메탈 발라드곡들, 선정적인 뮤직비디오 등은 기존의 '크래쉬다움'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약간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3년의 공백을 깨고 세상에 내 놓은 4집의 변화는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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